[중앙일보 칼럼] 한국기업이 보여줘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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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14년 2월 25일자에 제 칼럼이 실렸습니다. 졸고에 귀한 지면을 할애해주신 중앙일보 관계자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래는 칼럼으로 다듬어지기 전 원고입니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다 실리지 못한 헨리포드와 시골부인의 대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최근 소니의 구조조정 소식이 연이어 들린다. 전자산업의 전설이 삽시간에 허물어지는 느낌이다. 이제는 삼성전자가 전자산업을 대표하는 회사로 우뚝 서있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현대차의 뒤에는 포드, 닛산, 피야트, 혼다 등 전설적인 기업들이 서있다. 한국 대기업들은 참으로 엄청난 일을 해내었다.

하지만, 커진 몸집만큼 세계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을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가난했던 나라에서 세계적 기업들이 나왔다는 놀라움, 칭찬, 그 힘에 대한 두려움은 있을지언정, 존경과 사랑은 느껴지지 않는다. 국내 소비자들의 싸늘한 눈초리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인지 많은 한국 대기업들이 사회 공헌 활동을 한다. 어려운 이웃에게 김장도 담가주고, 연탄도 날라주고, 재난을 당한 외국에 구호물자도 보내준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로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될까?

헨리 포드는 전혀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노조를 폭력적으로 다루었고, 정부 정책과 반대로 1차대전 반전운동을 하였고, 반유태인 책도 썼다. 그래서 미움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꼽힌다. 왜일까?

포드는 대량생산 혁신을 인류에게 선사하였다. 1908년에 825불로 시작한 모델T의 가격을 1924년에는 260불까지 낮추었다. 근로자들이 1년하고도 몇달치 봉급을 다 털어넣어야 간신히 살 수 있었던 자동차를 4달치 봉급이면 살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시장은 폭발적으로 호응하였다. 연간 1만대의 생산량이 200만대까지 늘었다. 그는 부유층의 전유물이던 자동차를 보통 사람들이 탈 수 있는 시대를 열었고, 크게는 대량생산이라는 기념비적 혁신을 모든 산업에 전파하였다.

지금은 위태위태한 지경에 몰렸지만, 소니는 소형라디오와 워크맨으로 밖에서도 음악을 들을 수 있게 해준 기업으로 얘기된다. 스티브 잡스도 소니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도요타 자동차는 품질을 올리면서 비용을 낮춘 린 생산방식의 창시자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고, 도요타 박물관은 린 혁신의 성지와 같다. 아키오 모리타, 다이이치 오노 같은 혁신가들은 기업 세계의 세계적 영웅의 반열에 올라있다.

영어에 deserve라는 단어가 있다. “You deserve it”이라고 하면, “당신은 그걸 받을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훌륭한 일을 한 사람은 큰 보상을 받아 마땅하다고 여긴다. 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없애주고, 새로운 즐거움을 누리게 해주는 혁신을 한 기업과 기업인에게 사람들은 존경과 사랑을 보낸다.

그래서 한국의 대기업들을 보는 세계인들의 시선은 뭔가 불편하다. “이 사람들은 어떤 훌륭한 일을 했기에 이렇게 돈을 많이 버는 거지?”라고 묻는 듯하다. 우리 나라 국민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혁신을 한 기업과 사람이 큰 부를 deserve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혁신을 경영공학적으로 접근한다. 어떤 분야가 새로 뜰 것인가? 수익 모델은 확실한가? 하지만 위대한 혁신은 대개 계산보다는 관심과 사랑의 결과였다. 헨리 포드는 회사를 설립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아주 많은 사람들을 위한 차를 만들 것이다. 그 차는 가족을 태울 수 있을 만큼 크고, 한 사람이 탈 수 있을 만큼 작을 것이다. 그것은 최고의 재료로, 최고의 사람들에 의하여, 현대의 기술로 가능한 가장 단순한 설계로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 차는 가격이 아주 낮아서, 웬만큼 봉급을 받는 사람이라면 사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신이 내려주신 열린 대지에서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조지아 농촌의 한 부인은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이봐요, 헨리. 당신의 자동차가 우리를 진흙탕에서 건졌어요. 우리의 삶에 기쁨을 가져왔어요. 우리는 그 차의 덜그럭거리는 소리까지도 사랑했어요.”

이건 사랑의 대화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묘지에 묻혀있는 사람들중에 제일 부자인 것은 내겐 중요하지 않다.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 우리가 뭔가 훌륭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 그게 중요하다.”

왜 사랑 받지 못하는지 고민하지 말고, 어떤 사랑을 줄지를 고민하기 바란다.

2 Responses

  • 애덤 스미스가 말했었지요 "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 할 수 있는 건 푸줏간 주인, 술도가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챙기려는 생각 덕분이다" 라고요.
    근저에는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기심이 있고 외재적으로만 사랑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을까요?

    • 매우 어려운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잘 살기 위한 이기심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헨리포드가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었을 때에 그는 자선사업을 한 것이 아닙니다. 저렴한 자동차를 만들면 큰 수요가 있을 것이고, 대량생산체제 때문에 이익도 충분히 낼 수 있다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감히 철학적으로 생각을 해보자면, 타인에 대한 자비심과 이기심을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세계를 발전시키는, 그런 일을 하고싶다는 사람들이 꽤 있죠. 그건 이타심이지만 이기심이기도 하다고 봅니다. 그 사람이 이기심을 억누르고 그런 마음을 먹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면 그게 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요.

      전략적으로도, 당장 돈을 벌겠다는 생각만 하면 고객들의 니즈가 잘 안 보이고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다라는 방법도 잘 안 보이는 것 같습니다. 보통 어려운 문제에는 오랜 고민이 필요한데, 관심이 없으면 오래 고민하기 어려우니까요. 사업은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존경과 사랑을 받는 혁신가의 반열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자기가 해결하려는 어려운 문제에 몰입한 것이 아니라, 되는 사업을 따라다녔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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