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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니치, 창조경제, 일자리 2.0

    매스니치는 우리 사회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 체제가 인류의 삶의 모습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것처럼, 만약 매스니치가 여러 분야에서 현실화된다면 우리의 삶은 지금과 많이 달라질 것이다.

    최근 정부는 창조경제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매스니치 생태계 모델은 ‘어떤 창조성?’이라는 물음을 던지게 한다.

    우리나라에서 창조성을 얘기할 때면 페이스북이나 구글처럼 세상을 바꿀 창조성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런 창조성은 많이 나오기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발휘할 수 있는 창조성은 매스니치 화가적인 창조성이다. 새로운 맛의 맥주, 새로운 재미의 게임, 독특한 옷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창조성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종류의 창조성은 매스니치로 말하자면, 앱스토어나 오픈마켓처럼 생태계를 새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캔버스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맥주나 앱을 만드는 것과는 조금 다른 종류의 창조성이 필요하다. 매스니치 아티스트의 창조성이 컨텐트적인, 예술적인 창조성이라면, 캔버스의 창조성은 사업모델적인 창조성이다. 전략가적인 창조성이다.

    우리 사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창조성은 사업모델적인 창조성보다는 아티스트적인 창조성이어야 한다. 물론 캔버스적인, 생태계를 만드는 창조성이 존재해야겠지만, 그것은 상대적으로 소수가 할 일이다.

    매스니치가 주는 시사점 하나는 일자리에 대한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기계, IT 기술이 사람들을 대체한다는 얘기가 지식인들 사이에서 화두가 되고 있다. Race Against Machine 같은 책도 나왔다. 공장에서는 자동화된 로봇이, 사무실에서는 컴퓨터가 어지간한 일은 대체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한 대책 아이디어들은 별로 없다. 때로는 그 문제를 얘기하는 사람들이 제조업의 미래로 3D printing이나 로봇을 얘기하여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3D 프린팅이나 로봇은 중요한 발전이겠지만, 그것은 기계가 사람을 몰아내는 현상을 완화하기보다는 심화시킬 가능성이 높은 도구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매스니치는 여기에 대한 분명하고도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기계가 점점 발전하여 공장과 사무실에 사람이 점점 덜 필요하게 되고 전통적인 대기업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지라도 매스니치는 새로운 종류의 일자리를 제공한다. 매스니치의 화가 말이다. 자신의 독특한 취향을 발휘하여, 일정한 수의 고객을 만드는 장인이 되어야 한다. 기계가 할 일은 기계에게 주고, 사람들은 사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물론 대기업의 안정적인, 또는 안정적이라고 일시적으로 느끼는, 직장은 아니지만, 창의성을 발휘하고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자리다.

    애플 웹사이트에 가면 애플의 일자리 창출 기여를 소개하고 있는데, 5만명 정도의 사람을 직접 고용하고 있고, 25만명 정도를 협력업체가 고용하고 있다. 합해서 30만명 정도의 전통적인 일자리 창출이다. 애플은 이와 함게 애플의 앱 생태계로 인한 앱경제(App Economy)에서는 29만명 정도의 일자리가 창출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통적인 일자리 창출과 거의 비슷한 숫자이다. 이미 대단한 숫자지만, 향후 가능성을 보면 앱경제에서 창출되는 일자리가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듯이, 대량생산되는 애플의 하드웨어를 만드는 전통적인 일자리는 많이 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크래프트 맥주회사도 10만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얘기하고 있다. 앞으로 크래프트 맥주가 발전할수록 더 늘어날 숫자이다. 참고로 AB InBev는 전세계에 11만8천명을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매스니치는 교육에도 큰 변화를 요구한다. 아직도 교육은 대량생산체제에 적합한 시스템이다. 분석, 암기, 주어진 문제 풀이에 능숙한 사람을 만든다. 하지만 매스니치 체제에서 많은 사람들은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가적인 소질을 길러주어야 한다.

    정부가 좀 더 구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주세율을 낮추어주고, 홈브루잉을 허락하는 등의 규제완화는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의 활성화에 큰 도움을 주었다. 우리 나라에는 아직도 여러 산업에 진입 규제가 있다. 특히 일정 규모가 되지 않으면 영업을 하지 못하는 규제는 매스니치 생태계에는 완전히 치명적인 것이다. 이 산업은 장치산업이니까 자본금이 얼마는 있어야지 류의 규제는 매스니치의 싹을 죽이는 것이다. 매스니치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길 바란다면, 작은 회사의 창업과 운영을 어렵게 하는 각종 규제를 없애야 한다.

    대기업의 관점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산업혁명 이후의 대기업은 최종 고객이 사용하는 상품을 직접 제공하는 사업모델을 취해왔다. 전형적인 대량생산 모델은, 중소기업들이 부품을 대기업에 공급하고 대기업은 최종제품을 조립 완성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모델이었다. 대기업이 무대 위의 주인공이었고, 중소기업은 무대 뒤의 조력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매스니치 모델에서는 그 역할이 바뀐다. 소비자가 사는 옷, 앱, 맥주는 작은 회사들이 공급한다. 대기업은 무대 앞의 예술가를 위한 무대 뒤의 조력자가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물론 대기업이 화가 모델을 유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주요 언론사들이 양질의 컨텐트를 만들어내고 일관성 있는 논조와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다면, 아무리 블로거들이 발전해도 존재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대량생산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제품은 실용적인 사람들에게 여전히 인기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매스니치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면 주인공은 예전과 같은 소수일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한다. 많은 경우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 자리를 양보하고, 뒤에서 그의 화려함을 도와주는 캔버스 역할을 하는 역할 변경에 적응해야 한다. 좋은 소식은, 애플이나 구글, 지마켓 등에서 보듯이, 캔버스는 엄청난 사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100명이 농사를 지어도 80명이 먹을 거리밖에 못 만들었다. 산업혁명은 100명이 먹을 것을 10명이 만들 수 있게 해준다. 나머지 90명은 뭘 할 것인가? 매스니치는 그 90명이 대부분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매스니치는 예술가의 시대이다.